승진 못 하는 이유 (평가 기준, 사내 정치, 소통 전략)

 

승진하는 사람을 축하

솔직히 저는 인사팀에 들어오기 전까지, 회사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당연히 승진시킬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3년간 승진 심사를 진행하면서 깨달은 건, 야근 횟수와 승진은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매년 연봉 협상 시즌이 되면 "저는 사고 한 번 안 쳤는데 왜 제 고과만 이렇죠?"라고 항의하시는 분들을 만나는데, 그분들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하나입니다. 회사는 감사는 하지만, 보상은 다른 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평가 기준: 숫자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점수

인사팀이 승진 후보자를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당연히 KPI(핵심성과지표)입니다. 매출 달성률, 프로젝트 완료율, 목표 대비 성과 같은 수치들이죠. 그런데 제가 실제로 승진 회의에 참석해보니, 이 수치들은 일종의 '1차 필터'일 뿐이었습니다. 같은 점수대의 후보자가 여러 명 있을 때, 최종 결정을 가르는 건 전혀 다른 기준이었습니다.

인사팀 내부에서는 이걸 '조직 기여도'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이 한 단계 올라갔을 때 팀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겁니다. 한 번은 영업 실적이 중위권인 대리님이 있었는데, 신규 입사자 온보딩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신입 이탈률을 30%나 낮춘 적이 있습니다. 반면 실적 1등인 과장님은 개인 성과는 탁월했지만, 팀원들에게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서 팀 전체 평균이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대리님이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점수'는 공식 평가표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원진과 팀장들은 분명히 체크합니다. 문제 해결 능력, 위기 상황 대처, 팀워크 기여도 같은 것들이죠.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이 엑셀 시트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역은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겁니다.

사내 정치: 줄 서기가 아닌 번역의 기술

많은 분들이 '사내 정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부감부터 느낍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인사팀장으로 일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진짜 정치는 아부가 아니라, 내 성과를 조직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같은 프로젝트를 완료한 A씨와 B씨가 있습니다. A씨는 보고서에 "고객 만족도 향상"이라고만 적었고, B씨는 "신규 고객 재방문율 15% 증가로 분기 매출 2억 기여"라고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누가 더 눈에 띌까요? 둘 다 똑같이 열심히 일했지만, B씨는 자기 성과가 회사 이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할 줄 아는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하는 '번역'입니다.

일부에서는 "실력 있으면 알아서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건 너무 순진한 기대라고 봅니다. 임원진은 하루에 수십 개의 보고를 받습니다. 여러분의 성과를 일일이 찾아서 평가해줄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그게 오만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제 경험상 이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승진 가능성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기업이 '상사와의 친밀도'에 점수를 더 주는 구태의연한 평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강하게 비판받아야 합니다. 인사팀으로서 이런 문화를 바꾸지 못한 책임도 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는 나쁜 것"이라며 아예 담을 쌓는 건 전략적이지 못합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지만, 그 안에서 내 방식을 찾는 건 지금 당장 가능한 일입니다.

소통 전략: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조건

인사팀이 승진 후보를 검토할 때 반드시 확인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내 평판(Reputation)'입니다. 이건 공식 평가 항목은 아니지만, 실무진과 타 부서 담당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물어봅니다. "이 사람과 다시 일하고 싶으신가요?"라고요. 대답은 놀랍도록 솔직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사례가 있습니다. 기술력은 천재적이지만 팀 미팅 때마다 동료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결정해버리는 과장님이 계셨습니다. 프로젝트는 성공했지만, 팀원 세 명이 번아웃으로 휴직 신청을 냈습니다. 반대로 업무 능력은 평범했지만 팀 내 갈등이 생길 때마다 중재를 기가 막히게 해서 프로젝트 지연을 막은 대리님도 있었습니다. 승진 명단에 누구를 올렸을까요? 당연히 후자였습니다.

인사팀은 단순히 현재 성과만 보는 게 아닙니다. 이 사람이 승진했을 때 조직에 어떤 시너지를 줄 것인가를 봅니다. 관리자가 되면 더 이상 혼자서만 일 잘하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팀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갈등을 조율하고, 상황을 읽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사팀은 후보자의 '소통 능력'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1. 회의에서 다른 사람 의견을 경청하는가
  2. 문제 발생 시 혼자 끙끙대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가
  3.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팀원과 공유하는가
  4.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려는 태도를 보이는가

이 네 가지 항목은 제가 인사팀에서 실제로 체크하는 비공식 기준입니다. 여러분이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는다면, 죄송하지만 그건 인사팀 입장에선 '가성비 좋은 일손'에 머물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일머리와 일손: 바쁨과 성과의 결정적 차이

인사 상담을 하다 보면 "저는 매일 야근하는데 왜 제 평가만 낮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야근으로 회사의 어떤 문제가 해결됐나요?" 대부분 답을 못 하십니다. 단순히 주어진 업무량을 소화하느라 바빴을 뿐이거든요.

회사는 '일손'에게는 감사하지만, '일머리'에게는 보상을 줍니다. 일손은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이고, 일머리는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이건 좀 냉정한 얘기지만, 인사팀 입장에서는 명확한 차이입니다.

한 번은 콜센터 상담원 중에서 승진 대상자를 선정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C사원은 하루 평균 통화 건수 150건으로 팀 내 1등이었습니다. 반면 D사원은 120건 정도였죠. 그런데 D사원은 고객 불만 패턴을 분석해서 FAQ 개선안을 제안했고, 그 결과 전체 팀의 평균 처리 시간이 20% 단축됐습니다. 누가 승진했을까요? D사원이었습니다. C사원은 열심히 했지만, D사원은 시스템을 바꿨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실함이 곧 승진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성실함은 기본이고, 거기에 '문제 해결'이 더해져야 진짜 평가가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쁘다면,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세요. 이 바쁨이 단순 반복 작업인지, 아니면 회사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를요.

인사팀으로서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이제는 '열심히'라는 단어 뒤에 숨지 마세요. 여러분의 성과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 성과가 조직에 어떤 가치를 줬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지지해 줄 우군을 만들고, 내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까지가 여러분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회사는 부모가 아닙니다. 알아서 챙겨주길 기다리는 건 오만이 아니라 순진함입니다. 실력은 기본이고, 그 실력을 전략적으로 보여주는 게 진짜 실력입니다.

--- 참고: 승진 심사 및 핵심 인재(High-Potential) 선발 실무 데이터 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