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정치의 실체 (조직 영향력, 네트워킹, 평판 관리)
13년 동안 인사팀에서 일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한탄이 있습니다. "저는 일만 열심히 했는데, 정치 잘하는 동료가 먼저 승진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인사고과 위원회에 앉아 있던 제 눈에 보인 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 동료는 단순히 아부를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성과가 회사 전략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끊임없이 보고하고, 타 부서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관계를 쌓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조직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조직 내 영향력(Organizational Influence)이란 본인의 의견과 성과가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힘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이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윗선이 귀 기울이고 예산이나 인력을 배정해주는 상태를 뜻합니다. 제가 인사팀에서 직접 목격한 케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기술 실력이 평범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관련 부서 책임자들과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사전 조율을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마케팅팀 협조가 필수인데, 미리 일정 공유드려도 될까요?" 같은 식이었죠. 반면 실력이 최고였던 다른 PM은 "내 일만 제대로 하면 되지"라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결정적 순간에 타 부서의 비협조로 프로젝트가 지연됐고, 인사평가에서 "협업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직 영향력은 성과만큼이나 중요한 변수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도, 그것이 회사의 우선순위나 의사결정권자의 관심사와 연결되지 않으면 평가 테이블에서 묻히기 쉽습니다. 실제로 인사고과 위원회에서는(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성과 수치만큼이나 "이 사람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중요하게 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수십 번 봤습니다.
네트워킹은 줄 대기가 아니다
사내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은 대부분 네트워킹을 "줄 대기"와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제가 13년간 지켜본 바로는, 진짜 네트워킹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네트워킹이란 부서 간 이기주의(Siloing)를 깨고 협업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소통 역량입니다. 여기서 사일로잉이란 각 부서가 자기 부서 이익만 챙기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게 심해지면 회사 전체가 비효율에 빠집니다.
제가 인사팀장으로 일할 때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한 과장급 직원은 분기마다 타 부서 팀장들과 점심 약속을 잡았습니다. 단순한 친목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우리 팀에서 이런 프로젝트 준비 중인데, 혹시 마케팅 쪽에서 참고할 만한 데이터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며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회사 내 여러 부서의 움직임을 파악했고, 본인 팀 프로젝트에 필요한 협조를 미리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네트워킹 능력은 필수 평가 요소가 됩니다. 임원 승진 심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 부서 간 갈등 조정 경험이 있는가
- 전사 프로젝트에서 타 부서 협조를 끌어낸 사례가 있는가
- 사내 주요 의사결정권자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가
이런 항목들은 결국 네트워킹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실력만으로는 대리나 과장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조직 내 관계 자산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평판 관리, 성과만큼 중요하다
인사고과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제가 깨달은 가장 냉정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승진 결정 과정에서 평판(Reputation)이 성과 수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평판이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조직 내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말합니다. 단순히 인기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고 협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쌓여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승진 후보자 논의 과정에서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A씨는 실적은 좋은데, 협업할 때 팀원들 의견을 안 듣는다는 평이 많아요." "B씨는 수치상으론 조금 밀리지만, 위기 상황에서 부서 간 갈등을 잘 조율했다는 피드백이 많습니다." 이런 평가가 쌓이면 결국 B씨가 승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평소 일하는 태도, 회의에서 발언하는 방식, 동료의 부탁에 대응하는 자세 같은 것들이 누적되어 형성됩니다.
사내 정치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고 외면하는 태도는, 솔직히 말하면 직업적 오만함일 수 있습니다.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결국 사람이 내립니다. 실력이 100인데 정치력이 0이면, 그 가치는 50도 전달되지 않는 게 조직의 냉정한 생리입니다. 물론 줄 대기나 편 가르기식 정치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는 금방 밑천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비판하고 싶은 건 "일만 잘하면 알아서 알아주겠지"라는 수동적 태도입니다. 본인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보고하고, 조직 내 우군을 만들고, 타 부서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로 직장인의 핵심 역량입니다. 정치를 피하지 마세요. 대신 본인만의 정직하고 실력 있는 영향력을 구축하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13년간 인사팀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교훈입니다.
--- 참고: 인사팀 13년 차 사내 갈등 조정 및 승진 심사 위원회 참여 경험 기반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조직 내 정치적 역량과 커리어 성공의 상관관계' 연구 참고